영화 보이후드 (Boyhood, 2014)는 비포 선라이즈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입니다. 오늘은 이 영화의 미학적 부분과 12년간 12개의 시퀀스들, 그리고 메이슨의 눈으로 바라본 12년이라는 세월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줄거리
주인공 꼬마 메이슨은 엄마 올리비아. 누나 사만다와 함께 텍사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엄마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고, 아빠와는 이혼하였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휴스턴 대학 근처로 이사를 갑니다. 주말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이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면 두 사람은 또다시 다툽니다. 이런 상황들을 꼬마 메이슨이 계속 지켜봅니다. 그러던 중 엄마는 대학교수 빌과 가깝게 지내고 재혼을 하게 됩니다. 양아버지 빌에게는 민디와 랜디 남매가 있었고 메이슨과 가족이 됩니다. 하지만 3년쯤 지나, 양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 시작되고, 엄마가 집 차고에서 폭행당하는 장면을 어린 메이슨이 보고 맙니다. 견딜 수 없던 엄마는 메이슨과 사만다만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갑니다. 가족들 모두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가 대학교수가 되면서 밖으로 겉돌던 메이슨도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려 학교 생활에 점점 적응해 나갑니다. 메이슨에게 여자친구도 생기고 장래에 대한 꿈도 갖게 됩니다. 엄마는 퇴역 군인인, 엄마의 학생과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이 또한 행복한 결혼생활은 아니었습니다. 새 양아버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값이 폭락하자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고 가족들과 마찰도 심해지게 되어 엄마는 또다시 이혼을 하게 됩니다. 엄마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동안, 친아빠는 재혼을 하고 새 가정을 잘 꾸려갑니다. 누나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게 되고 메이슨은 사진과 예술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친아빠의 가족과 만났을 때 메이슨은 16번째 생일 선물로 성경책과 정장, 총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메이슨이 대학 기숙사로 떠나는 날, 엄마는 자식들을 낳아 기르고 대학도 보내고 나니 , 내 장례식만 남았다며 웁니다.(내 인생이 좀 더 특별할 거라 생각했는데) 별거 없구나... 라며 한탄을 합니다. 대학에 들어간 메이슨은 새로운 친구들과 하이킹을 나섭니다. 그곳에서 니콜은 우리가 이 순간, 시간을 잡는 게 아니라 이 시간이 우릴 잡는 거라 말해야 할 것 같다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의 미학적 부분과 12년간의 시퀀스들
영화의 미학적 부분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하면서 오래도록 촬영한 영화는 보이후드가 처음이 아닙니다. 마이클 앱티드 감독을 1960년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당시 7살 아이들을 찍었고, 7년뒤 14 UP(fourteen up)이란 제목으로 다시 같은 사람들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7년마다 한 번씩 영화를 찍었고 이제 56UP이 상영되었습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죽거나 혹은 먼 나라로 이민을 가는 등 다큐형식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반면에 보이후드는 약간 비실현적인 면이 있는 영화입니다. 12년 동안 6살 아이와 그 주변인물들을 1년에 한번씩 만나서 영화를 찍고 또 다음 해에 만납니다. 12년이란 시간은 예측이 어렵고, 특히 배우들이 어떻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미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2002년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35MM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만, 세월이 흘러 디지털이 대세가 되었고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2013년 마지막 시퀀스를 찍을 때는 필름으로 찍을 수가 없었고 11년 전 장비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너무 노후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학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는 것은 실로 어려운 프로젝트였을 것입니다.
12년간의 시퀀스들 (통일성 유지 문제)
일년동안 얼마의 분량을 찍고 또 기다렸다가 일 년 뒤에 또다시 모여 얼마의 분량을 찍는 것을 12년을 진행했으니 모두 12개의 시퀀스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3시간이라는 시간 동안에 상영될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 시퀀스들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아카데미상을 놓친 게 , 개인적으로 참 아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주인공 메이슨은 매년 커가고 영화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 1년간의 시간의 격차를 부드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감독은 특별한 장면들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1개의 시퀀스가 끝나고 또 다른 1개의 시퀀스가 시작될 때 이동하는 장면을 다양하게 활용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사를 가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전 시퀀스에서 차를 타고 새집에 도착하는 순간, 장면이 전화되면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서, 아이가 새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는 엄마의 재혼 상대인 교수가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 시퀀스인 1년 뒤엔 두 사람이 이미 결혼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의 시간의 격차를 줄이고자 합니다.
이 영화 보이후드 속에는 중요하거나 큰 사건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3시간이란 상영시간 동안 지루하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12년이란 시간 동안에 메이슨이란 아이의 눈을 통해서 한 사람의 성장기와 일생을 보여줍니다. 한 평론가에 따르면, 12년 동안 메이슨이란 아이의 삶을 묘사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라면,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자칫하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사건이 중심이 될 수 있고, 영화 전반적인 전개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큰 사건들 없이, 예를 들면, 이사를 간다거나 전학을 간다, 대학에 들어간다와 같은 작은 사소한 사건들로 세월을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이나 이혼도 같은 예라고 합니다. 메이슨이 양아버지들과 만날 때 그리고 친아버지를 만날 때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때 메이슨은 어떻게 이 모든 시간들 속에 지내왔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감도 가면서 엄마의 이혼보다 더 큰 사건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대학으로 떠나는 둘째 메이슨에게 엄마가 울면서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너희 둘을 대학에 보내고 이제 뭐가 남았는줄 아느냐, 내 빌어먹을 장례식만 남었다. 그러자 메이슨은 40년 넘게 남은 미래를 왜 미리 걱정하냐며 엄마를 달래 봅니다.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 I just .... thought there will be more.'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저도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 인생은 좀 더 특별했으면, 내 아이들의 삶은 좀 더 빛났으면... 뭔가 나를 위해 아이들 자신을 위해, 인생이, 어쩌면 내 시간이 나에게 뭔가 더 특별한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메이슨의 12년간의 이야기
이 영화는 메이슨 이라는 6살 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입니다. 메이슨이 이해하지 못했거나 못 본 장면들은 영화 속에서도 똑같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예를 들면, 재혼 후에 집안 차고 같은 곳에서 , 어머니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것처럼 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차고로 들어가고 엎드려 소리치는 엄마와 화가 난 새아빠를 보고 무슨 일이지 약간 당황해 하는 장면입니다. 차고의 셔터는 반쯤 내려져 있었고 어쩌면 메이슨은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의 눈에 엄마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잠깐 보여주고 넘어갑니다. 메이슨의 어머니가 재혼을 했을 때 폭력적인 남편과 헤어지는 장면 역시 메이슨의 눈높이에서 그려진 듯합니다. 재혼가정에서 새로 만난 형제자매들은 메이슨에게 소중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폭력을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려 하는 엄마는 4명의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려 하지만 양육권 때문에 남편의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합니다. 메이슨은 새아빠의 집을 나가면서, 그리고 엄마의 차 안에서 한동안 형제로 지냈던 두 아이들이 집 안 계단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던 모습을 힘없이 바라봅니다. 새아빠의 아이들도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두 아이들을 떠나보냅니다. 그 아이들은 이제 못 만날 듯합니다. 서로의 인생에서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된 겁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테니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학친구 4명이서 하이킹을 가는 장면입니다. 큰 산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인생과도 시간과도 같이 여겨졌습니다. 먼저 영화를 봤던 지인의 말처럼 , 마치 지난 12년간 제가 메이슨을 키워온 듯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슨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할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메이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흔히들 말하지. 이 순간을 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될 거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라고 말입니다. 이 대사가 무슨 의미인지 역시 한 평론가의 의견을 참고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12년간 찍으면서 링클레이터 감독만의 결론 같은 대사 혹은 독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감독의 전작 비포 시리즈는 그림 같은 유럽에서 9년마다 한 번씩 18년간 2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비포 시리즈는 삶을 통째로 뒤바꾸고 결정지어버리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 관한 영화라면, 이 보이후드 , 반대로, 삶이라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모여서 하나의 큰 강물을 이루어 흘러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삶이다. 완전히 다른 결론이지만 둘 다 의미가 있습니다. 평론가의 얘기를 듣고 보니 마지막 대사가 더 이해가 됩니다.
그리거 영화를 보고 계속 리뷰를 하다보니 제 자신이 벌써 몇 번의 환생을 거쳐 여러 인생을 산 듯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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